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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流의 엄마와 아빠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다른 음식보다 먼저 먹을 것이냐, 아니면 나중에 먹을 것이냐에 관해 확실한 견해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流 엄마는 일단 맛있는 음식을 먼저 먹고 그 후에 덜 맛있는 음식으로 젓가락을 옮기는 반면, 流 아빠는 맛있는 음식을 젓가락이 가는 가장 마지막 코스로 남겨두는 편이다.

혹자는 이러한 차이를 -流 아빠는 맏이이고, 流 엄마는 둘째라는- '가부장제적 위계질서 하에서의 위치가 어떠했느냐'라는 관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맏이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접근 권리를 보다 많이 향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마지막까지 남겨두는 '여유로움'도 가능했던 반면, 둘째는 맏이와 막내 사이에서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야했기 때문에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는 것인데 - 이러한 설명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보인다.

그럼, 이처럼 "좋아하는 음식을 언제 먹을 것인가?"라는, 날마다 몇번이고 (무의식적으로나마) 결단을 내려야 하는 중차대한 사항에 대해 심각한 의견차이를 보이는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과연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 아이들마다 다르고, 또한 같은 아이라 하더라도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의 流는 "좋아하는 음식은 마지막에 먹는다"는 행동양식을 의식적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流의 행동양식은 어째 그의 아빠보다도 더 철저해 보인다.


2.

어제, <갑빠 에비센>이라는 과자를, 저녁 식사 후 디저트로 먹게 되었다. '갑빠 에비센'이란 한국에 있는 '새우깡'의 원조가 되는 과자인데, '우메보시챠즈케 맛'을 근처 슈퍼에서 세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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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길래 사오게 되었고, 최소목표치로 정해져 있는 식사량 이상을 먹은 자에게만 이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식사를 마친 流가 의례 자기 몫으로 배급받은 일본 새우깡을 다 먹으려니 했는데, 과자를 몇개 입에 넣은 流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과자 너무 맛있으니까 오늘 다 먹지 않고, 내일도 또 먹게 남겨놓을 거야."

현재시점에서의 욕망실현을 스스로 금지하는 대신, 그 지연된 욕망실현이 '미래에 실현될 것임을 기대하며 참는 것'이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사실을 하나 깨달은 流였다.

어째,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그렇다.

3.

어제, 流 아빠는 저녁 늦게서야 집에 들어왔다. 맛있는 '디저트'를 즐겼던 流는 아빠가 집에 오자마자, 장난끼어린 웃음을 지으며


"아빠, 오늘 디저트 먹었다. 流가 디저트 숨겨놨어~! 한번 찾아봐!" 하는 것이 아닌가.

아빠는 "응? 디저트를 숨겨놨다고? 어디 있을까?" 하고 찾기 시작했는데, 곧이어 流의 말이 이어진다.


"아빠. 침대 위에는 없다~"

이 말은 들은 流 아빠는, 물론 침대 위로 손을 뻗고 손쉽게 디저트를 찾을 수 있었다.

생각 밖의 상황에 당면한 듯, 당황한 표정을 하며 流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流가 아빠한테 '디저트 침대 위에 없다'고 거짓말 했는데, 아빠가 디저트 찾았다. 이상하다. 그치? 분명히 流는 거짓말을 했는데, 아빠는 어떻게 찾았을까?"

그러게, 流는 분명히 거짓말을 했는데 어떻게 아빠가 찾게 된 것인지 참말로 궁금하다. ^^

침대 위에 숨겨 놓은 것을 절대로 아빠가 못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 거기에는 없다는 것을 강조해, 아빠가 침대 위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 하는 추측을 해 본다.

Posted by ani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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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다르나의 노래]라는 인형극을 보러, 시부야에 있는 전력관([동경전력]이라는 회사의 PR을 위한 건물)에 갔다.

인형극은 재미있었는데, 流는 너무도 이야기에 몰입한 나머지, 웃어야할 대목에서도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언뜻 봐서는 재미있어 한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굳은 표정이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다보니 마음이 쿵쾅쿵쾅거려, 웃을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라 다행이지, 만약 슬픈 이야기였다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을 것이다.

굳은 자세와 표정으로 일관했던 流였으나, 다 보고 나오면서 너무 재미있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그리고, "다음에도 또 보러 올까?"하고 물었더니,

"응! 내일 또 해?"라고 묻는 流였다.

전력관에서 [아다르나의 노래]를 또 보려면, 한 한달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서 [아다르나의 노래]를 보게 되었냐면...

아이들에게 동화책에 관심을 갖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인형극을 무료로 보여주는 재단법인이 있는데, 이 재단법인은 1년에 인형극 하나를 순회공연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동남아시아의 전래동화를 번역하고, 이를 인형극으로 만들어 순회공연을 하는 것 같다. 순회공연을 하면서 관련상품(동화책, 티셔츠 등등)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그 수익금은 모두 해당국가의 아동도서 보급에 이용된다고 한다. 그 재단법인은 [おはなしきゃらばんセンタ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다르나의 노래]를 재미있게 관람한 후, 流도 티셔츠를 하나 샀다.


 내일 보육원에 입고 가겠다며, 고이 모셔두었다.

2.

일본에서 달로 인공위성을 쏜다는데, 그 인공위성에 사람들의 이름과 소원을 새긴다고 한다.

누구든 신청 가능하다고 해서, 流가족 셋 모두 각자의 이름과 소원을 신청했다.

일본어로 신청할 때는 [달에 소원을! 캠페인], 영어로 신청할 때는 [wish upon the moon]에 가면 신청양식이 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궁금하다구?

流 엄마, 아빠 소원은 비밀.

流 소원도 비밀

  이긴 한데...

    "크고 멋진 로보트를 만들어서 타고 싶어요!"

       라는 소원을 누군가가 빌었다는 것 정도는 귀띰해 두어도 괜찮을 듯 하다.

Posted by ani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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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의 동료, 죠니 뎁

07년 2007.01.06 15:58 |
1.

새해 연휴 동안, [찰리와 초콜렛 공장] DVD를 빌려 봤다.

流는 이 [찰리와 초콜렛 공장]이 마음에 들어, 매일 한번씩 보고 또 봤다. 우리 가족이 DVD를 빌려 보는 가게에서는 최신작 외에는 '당일', 아니면 '일주일' 단위로 빌려주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찰리와 초콜렛 공장]을 본 것이 된다.

DVD라 영어 음성에 일본어 자막으로 보려고 했더니만,

流가 "영어는 싫어(하긴 流가 알아 들을 수 가 없으니...)." 라고 해,

일본어 음성으로 보게 되었다.


DVD를 돌려주기 하루 전, 流는 그 동안 일본어로 들었던 것이 지겨워졌는지

"한국어로 보자!"고 제안을 하는데...

안타깝게도 일본에서 빌려보는 DVD는 '영어 음성' 아니면 '일본어 음성'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어로 볼 수는 없는데?" 라고 대답해 주었더니

流 왈,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일본어랑 영어는 할 수 있는데, 한국어는 못 하나 봐?"

流는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 등장하는 죠니 뎁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일본어'로 말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2.

근데, "일본어랑 영어는 하는데, 한국어는 못 하나 봐?"라고 말하는 流의 말투가 어딘지 예사롭지 않으며, 그 눈빛에는 애정과 연민의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어지는 流의 말.

"流도 한국어랑 일본어는 해도, 영어는 못 하는데."

<할 수 있는 2>와 <할 수 없는 1>이라고 하는, <3>을 둘러싼 <2>와 <1>의 대비에서   

流는 죠니 뎁에게 동료애를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것은 '연민'을 동반하는 감정인 것이다.

왜냐하면, 流 또한 얼마 전에 '자신의 전능함에 대한 믿음'이 붕괴되는 <성숙=상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流는 (도대체 왜 그런 믿음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기가 보육원에서 외국어를 가장 잘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流는 -流와 같은 반에 아빠가 미국인인 아이(그리고 그 아빠는 아이에게 오로지 영어로만 말을 건넨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한국어 뿐만 아니라 영어도 가장 잘 한다고 주장했었다(정확한 용어를 쓰자면 "우겼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流의 태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그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자존감을 유지하는 심적 성향이 강한 나이 때에서, 현실적인 정보들에 입각해 '자신의 객관적인 처지'를 직시하는 심적 성향이 강한 나이 때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그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싶은데...

이제, 流는 이렇게 말한다.

"보육원에서 한국어를 제일 잘 하는 건 流고,

영어를 제일 잘 하는 건 아키챵이야."

이제 무엇에 있어서든 [제일 잘 하는 사람=流]이던 시대는 영원히 종말을 고한 것일 게다.

[찰리와 초콜렛 공장] DVD가 한국어 음성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던 그 순간, 流는 영어랑 일본어(?)는 하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죠니 뎁에게, 동료애 비슷한 그 무엇을 느끼고 있었던 것처럼 - 流 아빠에게는 비쳤다.

3.

流에게 2006년은 아마도 <상실을 동반한 성장의 해>로 기억될 듯 하다.

"불로불사"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어 '죽음'을 알게 되었으며, "전능감" 또한 잃어 '나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 둘 보다 더 중요한 <상실의 경험=성숙의 경험>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오늘 잠들기 전에 流가  자기를 더 이상 "우리 아기"라 부르지 말라고 해서, 엄마가 "알았네, 우리 총각."이라고 대답했더니, 流는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었다.

"아니야, <우리 어린이>라고 해줘!"

이제 流는 '아이'가 아니라 '어린이'이다.

Posted by ani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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