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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08.23 유령가족
  2. 2006.06.29 죽는 것은 싫지만, 영원한 삶도 싫은 流
  3. 2004.12.10 강좌

유령가족

masterpiece 2007.08.23 20:05 |
1.
[지미 뉴트론]이라는 머리가 무지막지하게 큰 남자 애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流는 그 프로그램을 매우 좋아한다. 오늘은 고대 유적 같은 곳에 가서 미이라나 유령 등과 조우하는 아슬아슬한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미이라나 유령 이야기면 '혹'하는 流가 그냥 있을리 없다.

애니메이션이 끝나기도 전에 싸인펜으로 흰 종이 위에 작업을 하기 시작하더니, 그린 것이 아래 그림.

죽어서 유령이 된 流 가족들이 묘지에서 으스스하게 나타나는 순간을 화폭에 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dbfud348


개인적으로, 묘지의 십자가가 특히 인상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流가 "죽은 가족"을, 그것도 流 스스로도 이미 죽은 그림을 그렸다는 점.

그렇다면,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하던 流가 드디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2.
안타깝게도 사태는 그렇게 단순치 않다.

流가 '죽음'을 극복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태는 어디까지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다른 그 무엇에 대한 욕망이 더 긴급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流는 최근 'power에의 의지'에 사로잡혀 있다.
힘만 월등하게 쎄고, 그 강력함이 따를 자가 없다면 - 그것이 이제 갖 죽은 것이든, 죽은지 1000년이 된 것이든 상관없다.

이를 극명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  레고의 '해골군단'에 대한  도가 넘치는 애정이다.

'해골군단'이란 아래의 사진에 있는 하얀 레고 모형을 말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gorhfe

(오른쪽 위에 보이는 손과 발은 流)

流가 어찌나 저 해골들을 좋아하는지, 流 생일 선물도 저 해골 레고였다.
레고에서는 해골군단 시리즈를 올 봄에 내놓았는데,
현재 流 집에는 그 시리즈 중에 두개만 빼고 다 있다.

왜 流가 해골들을 좋아하는가 하면,
해골들은 '이미 한번' 죽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 결코 죽을 일이 없어서이다.
그래서 '해골군단'은 결코 지는 일이 없다.

몇겹의 갑옷을 입은 '인간기사들'은 아무리 강력해도
'해골군단'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공격으로 인해
조금씩 상처받고, 서서히 오직 한번 뿐인 죽음을 향한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해골군단'은 그 아무리 많은 공격을 받는다 한들, 뼈가 스무곳 부러진다 한들 죽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한번 죽은 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골군단'에 대한 流의 사고방식에 비추어 보았을 때,
죽어서 묘지에 묻혀 있는 자기자신과 가족들을 流가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게 된 경위도 이해가 간다.

3.
하지만, 流는 여전히 '죽음'에 대해 많은 고뇌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 고뇌를
'해골군단'과 싸우는 '인간기사'들을 조종하는 사람들에게 流가 과하는 규칙을 통해 엿볼 수가 있다.

'해골군단'을 조종하는 流가 상대인 '인간기사'를 조종하는 사람에게 과하는 규칙이란
"결코 인간기사들이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해골군단'의 칼과 창과 총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대포와 레이저와 미사일마저도
- 오로지 그들의 적인 '인간기사'를 일시적으로 마취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무기들이다.

이미 죽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해골군단'이 결코 '실제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상황 중에' 죽는 일이 없듯이
'인간기사' 또한 -아무리 적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죽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 죽는다면, 그 '인간기사'가 죽음에 이르도록 한 '조종자'는
서럽기 그지없는 流의 애통한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며
슬픔과 분노로 일그러지고, 눈물로 범벅이 된 流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즉 流를 몇번이나 울린 후에야-  流 부모가 터득하게 된 사실이다.
Posted by ani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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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의 깨달음이, 流의 잠 못드는 이유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流의 엄마와 아빠는 流의 '불면의 원인'을 해소하고자, "불사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야 했다.

(옆 글 참조)  http://blog.daum.net/anryu/7630000

한데, 어제 流는 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 새로운 입장을 천명하였다.

그것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타잔"을 본 후의 일이었다.

"타잔"은 타잔의 아빠와 엄마가 표범에 의해 죽임 당함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에서 流가 강한 인상을 받았음은 분위기 상 명백했다.

이 장면에서 流가 어떠한 사유의 연상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겠지만, 流의 죽음에 관한 입장이 그 이후 바뀌고 말았다.

예전에는 '죽지 않는다'라는 것이 -'죽음'이라는 불행의 반대어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더 이상 그러한 입장을 갖지 않게 된 것이다. 다음이 어제 流가 아빠와 나눈 대화이다.

流 "우리는 불사야. 그치?"

아빠 "그럼~. 우린 불사지. 결코 죽지 않을 거야."

流 "근데~, 우리는 계속 죽지 않는거야?"

아빠 "그렇지."

流 "근데~, 죽지 않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아."

아빠 "流는 죽는 게 싫은 거 아니었어?"

流 "음~, 죽는 건 싫지만, 불사도 싫어."

아빠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流 "음~, 죽는 것도 아니고, 불사도 아니고, 그냥 '대충'이었으면 좋겠어!"

어찌하여 流는, '영원한 삶'이 싫어진 것일까?

Posted by ani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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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aomori 2004.12.10 00:19 |
그제부터 安流가 큰 마음을 먹고, 대단한 결단을 내렸다.
그 동안 애지중지해오던 물통을 포기하기로 했다.
자리에 눕기만하면 물통을 달라고 했던 安流.
그가 물통을 포기하기로 했던 것이다.
기특하기 그지 없어서 대신 얼마 전부터 먹고 싶어하던 딸기를 사다준다하였다.
安流 왈...
安流 : 조건이 있어. 내가 '혼자' 다 먹어버릴거야.

기특해서 사준다고 했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조건까지 달더라.
결국 그는 그 누구에게도 나누어주지 않고, 모든 딸기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오늘은 물통과 이별한지 3일째.
安流는 또 딸기를 찾고 있다.

그건 그렇고...安流의 어록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것도 둘이나...

하나.
엄마 : 나의 죽음을 헛되지 하지 말라.
安流 : 할 거 다.

둘. 安流 아빠는 요즘 강좌를 하느라, 저녁에도 집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安流는 [강좌]라는 단어를 외우기는 했다. 그러나...

安流 : 내가 공사하고 올께, 기다려!
(공사하는 소리 흉내내기) 쿵쾅 쿵쾅 뚝딱 뚝딱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아~ 다 했다!

잠시 후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安流 : 내가 강좌하고 올께, 기다려!
(어딘가로 향한다)......침묵......
(어색함이 감돌기 시작)......또 침묵......
엄마에게 돌아온 安流
安流 : 근데 강좌는 어떻게 해?

Posted by ani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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